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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지널] 오류시리즈 02
    작업중/(오리지널)오류시리즈 2017. 10. 14. 05:05




    2017/10/14 - [작업중/(오리지널)오류시리즈] - [오리지널] 오류시리즈 01






    오류시리즈


    part1. A mistake of an offender(범죄자의 오류)







    w.기라썬












    02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왔고,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에. 책상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확인하고,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이 수업준비를 한다. 무슨 책을 꺼내야 되는지, 숙제는 없었는지, 지난 필기는 꼼꼼히 했는지, 와글와글 시끄러운 교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문득 내가 오늘 아침에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학교까지 왔으며, 심지어는 아침에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지금 내가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왜? 나는 스스로 던진 의문에 자답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싫었다. 






    고개를 들어 칠판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녹색의 넓은 칠판을 꽤 자세하게 훑어 내리다가, 그 앞에서 나를 등지고 서있는 커다란 키의 누군가를 보았다. 나는 급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양 팔을 스스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는 빨리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다음 시간은 수학이다.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던 수학. 수업시간에 문제풀이를 시키는 선생님 덕분에 잔뜩 긴장하던 시간이다.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내 상태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싫었다. 나는 나를 감싼 팔을 풀며, 수학책을 찾았다. 그 또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난 테이프 소리처럼 나를 잡아 늘이기 전에, 정말 간단히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사물함과 책상 서랍을 뒤져 책을 찾을 뿐이었다.






    “이거 찾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필통을 결국 내팽겨 치듯 쏟고 말았다. 그리고 불쑥 내밀어진, 내 수학책을 쥐고 있는 큰 손을 보았다. 결국 보고 말았다. 나는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것 마냥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었다.






    “왜 그걸 네가...”





    그러자 그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네가 빌려줬잖아. 내가 필기 보여 달래서.” 대답하는 것이다. 나는 소름이 돋아서 뭔가를 말하려던 입을 닫았다. 왜 그걸 네가 가지고 있어. 그건 내가 분명히 얼마 전에 다른 반 친구에게 빌려줬었는데. 






    “너...너.......”





    갑자기 분노에 휩싸인 내가 부들부들 떨었다. 떨어진 필통, 쏟아진 필기구들, 그걸 주워 담고 있는 ‘모르는’ 사람.







    “너 누구야.”






    누가 봐도 다정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그의 표정이, 어딘가 묘하게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정아야 왜 안 먹어?”

    내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한 말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그냥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요 며칠, 너 급식 받아는 놓고, 손도 안 댄 거 알아?”

    나는 친구가 말하는 ‘며칠’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억나는 게, 없었다. 






    “그랬어? 내가......”




    순간 울컥했다. 내가 갑자기 울자, 친구가 당황한 눈치였다. 정아야, 왜 그래?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말 해봐. 들어 줄게. 나는 갑자기 터진 울음을 주체 할 수 없음에도, 이제야 내가 ‘며칠’ 동안에도 모두 똑같은 말들을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위로의 말을 던진 게 누구든 간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 하나 같이 똑같은 말들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혁이랑 싸웠어?’

    ‘인혁이랑 무슨 일 있었구나?’

    ‘인혁이랑.......’







    “아님 진짜 인혁이랑 싸운 거야? 요즘 너네 되게 서먹한 거 같아. 처음 만난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어색하진 않겠다. 심하게 싸운 거야?”



    친구의 어설픈 추측에도 결국, 똑같은 단어가 나오고 말았다.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떨어지면서 나를 잡아 묶는 것 같았다. 이 자리, 이 곳. 나의 자리였던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꽁꽁, 단단히 묶는 것이다. 이제는 이게 내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











     끔찍하게 내리쬐는 햇빛. 붉은 빛이 가득한 운동장, 그 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 나가고 있었다. 하교하는 무리들이 그 속에 있는 나를 포함해서 적은 숫자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이 운동장이 너무나 넓게 느껴졌다. 잘 없는 체육시간에 힘겹게 돌았던 그 운동장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해질녘의 저주인 것처럼, 순식간에 몰려오는 붉은 빛. 더운 날씨와 더불어 매미 우는 소리가 귀 따갑게 들려왔다.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구역질이 났다. 나는 동시에 끔찍하게 외로웠다. 너무 외로웠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이 느껴졌다. 수 십 번도 더 걸었을 이 하교 길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혼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확신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나는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이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는 저 ‘최인혁’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정아야.”

    그가 나를 불렀다.







    “정아야.......”

    다시 한 번 불렀다.








    나는 귀를 막고 싶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빙글빙글 돌아간다. 시야가 휘청, 내 몸도 휘청거렸다. 이대로 정신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부축하는 그가 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 손길을 뿌리쳤다. 









    볕이 뜨겁다. 이대로 녹아 없어져버릴 것처럼 내리쬔다. 볕 아래의 결 좋은 그의 검은 머리칼이 빛을 반사한다. 상냥하고 다정한 천사처럼,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너무나 기이하게 보일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존재인 마냥, 날 바라보는 그 두 눈이 너무 끔찍했다. 누가 봐도 분명 진심이 담긴 눈임에도 불구하고. 






    “너.......”

    내가 말했다.





    “나 알아?”

    “뭐?”

    그가 잘 못 들었다는 듯이 반문했다.







    “나 너 몰라.”







    그러자 그 표정이 괴롭다는 듯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우뚝 서서 굳어있는 그를 지나쳤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하교 길을 이어 걸었다. 

    아직도 여전히 볕은 뜨겁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이렇게 뜨거울까. 이 뜨거운 감정은 도대체 어디가 출처인가, 뜨겁게 눈시울을 적시는 이 눈물은 왜 이렇게 나를 비참히 만드는 것일까.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오답(誤答)인 건 아닐까. 나는 도대체 어떤 것을 옳다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일까,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너를 모른다. 혹시, 정말 내가 너를 알았던 건 아닐까, 내가 미쳐버린 건.......




    아닐까.










    어떻게 집 대문 앞까지 와서,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내가 계속 울며 걸어왔음을 기억했다. 속이 뜨겁다. 불덩이를 삼킨 듯, 저 뜨거운 태양을 삼킨 듯, 그것을 토해 낼 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속에 가득 담은 감정이 터지 듯, 폭발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안에 잔류한 감정들까지라도 게워내기를 바라며 한참을,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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