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오리지널] 오류시리즈 05
    작업중/(오리지널)오류시리즈 2017. 10. 14. 05:11



    2017/10/14 - [작업중/(오리지널)오류시리즈] - [오리지널] 오류시리즈 04







    오류시리즈


    part1. A mistake of an offender(범죄자의 오류)







    w.기라썬













    05









    '윤정아.

    '무슨 생각해?'

    '혹시 날 죽일 생각이라도 해?'

    '윤정아, 정아야. 봐. 이 좆같은 상황을 누가 그랬을 것 같아?'

    '내가 그랬어.'

    '네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내가 말이야.'











    **









     무슨 정신으로 교실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최인혁, 그 녀석은 분명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 맞는 모양이었다. 우습다. 남 일인 마냥, 거리감이 생긴 내 문제에 대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픽 웃었다. 나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그래! 나는 최인혁을 모른다! 그게 정답이다. 그래, 그래! 최인혁이 이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갑자기 나타나 내 삶을 엉망으로 깨버리고, 그 깨진 조각으로 본래의 형상이 아닌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 나는 녀석을 모른다. 나는 겨우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행동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예리한 칼날? 공포심으로 가득한 최인혁? 내가 그를 죽이는 영상. 두어 번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맞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래, 괜찮아. 괜찮아. 


    나는 이미 종례 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교실을 둘러보았다. 붉은 빛이 부드러운 천이라도 되는 듯이, 교실을 가득 덮었다. 그리고 그 풍경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는 방금 무슨 생각을 했던가? 죽인다고? 최인혁을? 잔인하게 사람을 난도질 하는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상한 나라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나는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정아야, 네 얼굴 좀 봐봐. 엄청 웃기다.“





    나는 흠칫 떨었다. 언제 교실에 들어왔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정말 가벼운 농담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빈정대는 그의 등장에, 또 잔뜩 긴장을 하는 것이다. 그 기묘한 얼굴은, 저 내가 ‘모르는’ 존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눈물이 차오르려고 하는 것을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러자 킥킥대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나는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아서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최인혁은 내 하는 모양을 눈동자로 쫓았다. 몸 위로 벌레가 기는 것 같았다. 수 십 마리의 꿈틀대는 벌레가 온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기분이었다. 저 끔찍한 얼굴을 없앨 수만 있다면, 최인혁을 죽일 수만 있다면! 저 눈을, 저 입을, 저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앉아있는 최인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또한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새에 내 어깨를 붙들고는 내가 일어났던 의자로 강하게 내리눌러 앉혔다. 긴장하고 있던 몸이 무색하게 힘없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마치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는 듯이, 사납고 두려운 그의 무력에 나는 다시, 무너져 내렸다. 





    “정아야, 어디 아파?”


     

    기묘하게 웃는 녀석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나는 결국 또다시 터지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정말 끔찍하게도, 나는... 






    다시 제자리 일 뿐이었다.








     **







     “평소에 병원이라곤 잘 안 가던 애가 왜 이렇게 쇠약해 진거야?” 약봉지를 들고 신발을 벗던 나를 보며 언니가 한 말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아무런 대답도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시 방문이 열리며 언니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정아야, 정말 요즘에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언니는 답지 않게 다정히 물어왔다. 나는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니라고만 둘러댈 뿐이었다. 쉬겠다고 말하고 침대로 기어들어간 나는, 다시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언니한테 사실을 말해볼까? 정말 진짜라고, 믿어달라고. 항상 내 편을 들어주던 언니였으니까, 혹시 알아주지 않을까? 

    나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정말, 언니라면 내 말을 믿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말 해볼까?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더 구석으로 웅크렸다. 눈가가 따뜻해지며 뭔가가 흘러내렸다. 나는 베게가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울었다. 차마 지금 자리를 박차고 나가 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또, 언니의 입에서 그를 왜 모르냐는 질문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만약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나는 아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한참을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서, 방안에는 가로등 불빛만이 스산하게 비췄다. 나는 띵하게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시선을 옮기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커먼 어둠 속에서, 가로등 빛이 새들어오는 곳으로 걸어 나오는 인영은, 분명히 최인혁이었다.



    “깰 때 까지 기다렸어.”



    그는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그를 보자, 나는 다시 뜨겁게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얼굴 근육을 씰룩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말 할 거야.”



    모두 다 말할 거야. 



    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기계적으로 중얼거렸다. 다 말할 거야. 모조리 다. 그리고 또 눈물이 났다. 아직도 흐를 눈물이 남았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또, 차갑게 식은 최인혁의 표정이, 가로등의 붉은 빛으로 물들어 한층 더 기괴해 보였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꺽, 꺽, 쏟아지는 감정들의 잔해와, 숨 쉴 때에 폐부로 들어차는 공포가 나를 정신 차릴 수 없게 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최인혁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었다.







    “이야기 해. 해봐. 네 말을 누가 믿을지 궁금해지네.”










    **













     침대에서 눈을 떴고, 평소와 같은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적어도 눈물로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교차하고 또 겹치고 엮이는 실타래같이 복잡한 머릿속이 아니라, 말끔히 정리된 생각들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평소와 같은 토요일’을 만들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탓이라고 여겨버리면 아무런 질문도 더 붙지 않는다.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평소의’ 토요일처럼 교복을 갈아입고, ‘평소처럼’ 등교했다. ‘평소와 같이’ 자리에 앉았고,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교실 안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없애버리자.


    죽이자.


    나는 분명히 생각했다. ‘최인혁’을 죽여야겠다고.




     










    .

    .

    .



Designed by Tistory.